일상 생각/QT

집단의 광기와 어리석음

언덕을 오르는 사나이 2024. 5. 17. 09:15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같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같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 누가복음 23:13~25

빌라도는 헤롯에게 까지 예수를 보내어 그를 심문해서 죄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때려서 벌주고(punish) 놓아준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죄로 때리는 형벌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유대인의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짓을 했기에 그냥 풀어줄 수는 없고 그가 잘못을 했다하니 질책이라도 해서 동조하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조치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빌라도의 판결 이후, 마치 영화의 각본과 같이 드라마틱하게 분위기가 고조된다.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 처형 시켜라'라고 한 소리로 반복적으로 외쳐댄다. 빌라도가 세 번 반복, 즉 확증한 사실로 묻되 이 사람이 행한 일 중 악한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무리들에게 이야기 했음에도 그들은 십자가 처형만을 재촉한다. 심지어 유대 관습 중 한명의 죄인을 사해 주는데 바라바라는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죄인을 대신 풀어주라고 소리친다. 무리들에게 예수는 형제 자매들을 죽인 살인자 보다 못한 증오의 대상이었을까? 그토록 극형에 처형을 시키고 싶은 것이 각 개인의 마음이었을까? 그 무리들을 모아 놓지 않고 한명씩 증인으로 세워 재판을 한다면 어땠을까? 그 집단의 지도자에 의도가 투영된 이미지로 예수를 판단하며 광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다.

집단은 광기가 나타날 때 위험하다. 사람은 모여있을 수 밖에 없으며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집단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집단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한 개개인들이 건강한 지도자를 키워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권위와 권세를 지닌 지도자는 언제나 타락할 수 있으니 그것이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