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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를 읽고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를 읽고

 

학부 마지막 학기에 <생물의 세계> 수업을 듣던 중,  성 선택 교과과정의 내용을 들으면서 소개되었던 리처드 도킨스 저자의 이기적 유전자 란 책을 당장 서점에 가서 사 읽게 되었다. 인간은 유전자 보호를 위해 프로그램 된 로봇기계에 불과하다라는 발상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마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이성들은 하나의 변수에 불과한 반면, 독립된 생명체로써 유전자가 인간의 육체에 올라타서 생존하는 매커니즘을 설명하고 있어서 여러 논란 거리도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창조론을 꾸준히 믿고 있던 나에게 다윈의 진화론은 전제부터 틀린 이론으로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근간으로 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가설과 이론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끔 한다. 물론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원숭이나 다른 동물에서 진화되었는가 하는 논의는 여기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을 가지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유전자가 가급적 개체로 하여금 올바른 도박을 할 수 있도록 뇌를 만들어 준 그 개체는 당연히 더 잘 살아남고, 따라서 그 같은 유전자를 늘려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조선시대   이전 여성의 미의 기준과 얼굴형태가 지금과 달랐고 남성, 여성의 신체 체격의 변화가 서구적인 형태에 닮아 가는 현상도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발견 과정에서 생물학 지식을 습득하기 보다 리차드 도킨스의 사고과정을 읽어 발상의 전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발상의 전환은 이기적으로 생존율이 높은 선택들을 하는 유전자에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설득력과 수 많은 응용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인간만이 동족을 죽이는 종이고 동물들의 싸움을 글러브를 낀 주먹에 의한 것으로 이타적인 행동으로 보는데 이 또한 유전자의 이기적이고 ESS에 따른 행동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흥미롭다. 경쟁자를 함부로 죽이는 것이 뚜렷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손익 계산을 이미 유전자는 하고 있어서 이타적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게임이론을 통해 여러 가지 사례의 경우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결과들을 예측하여 설득력을 가진다.

 

그의 이론에 따른 사례들을 보면서는 일반적인 생물들의 행동이나 선택의 이유를 유전자의 이기적 혹은 이타적인 목적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인간 사회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윈 이래 진화론에서 ESS 개념의 창안을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로 보고 있는데 이 개념은 이권 충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책에도 여러 사례들을 들고 있는데 나름대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적용을 시켜보기 좋은 이론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인재를 뽑고 배치하는 일에서 큰 회사 일수록 개개인의 능력들의 기준을 정보에 의존한 시스템에 따라 결정 되어지는데 그 효과는 능력에 따른 정확한 아웃풋이 생기기 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얻고는 한다. 이는 일벌들이 애벌레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어떤 일벌은 병이 걸린 애벌레 집 뚜껑을 뜯게 시키는 유전자만 가지고 있고 어떤 일벌은 집 뚜껑이 뜯어진 병 걸린 애벌레를 밖에 버리게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상호적인 역할을 함께 수행 할 때만 예측했던 결과를 낳게 되는 사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실 사회를 인간을 이루는 요소 중에 아주 미세한 유전자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지 않지만 미시적인 관점과 생물학적으로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아주 좋은 이론으로 받아들여 진다.

 

유전자 풀(pool) 속에 자신의 수를 증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개개의 이기적 유전자의 의식적인 목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살아남게 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남아 좀더 우수한 유전자로 죽지 않고 생존해 간다.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것처럼 나타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유전자가 다른 개체 내에서 자기의 사본을 인지할 때 그렇다. 바로 근친자-혈연자가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평균보다 높기 때문에 어미의 새끼에 대한 이타주의가 흔한 이유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밝혀진 사실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친자 관계를 유전자의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행위 양식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게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종에서 어미는 아비보다 자기 자식을 확신하고 육아에 열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어미는 눈으로 보고 만져 볼 수 있는 알을 낳거나 새끼를 가짐으로써 자기 유전자의 지참자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아비는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성적인 본능의 차이로 분명히 다르게 보고 있는데 이를 유전적으로 근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었다.

 

한편, 종의 이익을 위해 유전자는 개체수를 조절하고 인간은 합리적인 출산을 한다. 자원의 한계에 따라서 자신의 복제된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트리고 싶어하는 출산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멜더스의 가설과도 일맥 상통하는데 산업혁명 이전 세계의 경제는 한정된 자원과 생산량으로 일정하게 인구가 증가하다가 수확체감의 법칙으로 다시 인구가 조절되는 현상이 있었는데 산업혁명 이후 생산량의 엄청난 증가와 함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상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어 졌던 출산율 저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산업화의 고속성장으로 이루어낸 근대화 이후 이제 개인의 삶의 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동시에 복지국가를 이루지 못하면 인구 감소에 따른 국력 손실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있게 된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간다면 이제는 민족주의 의식을 넘어서 국제 결혼의 선입견을 버리고 자유로운 출산 문화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일제 제국주의의 황국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이지만 이제는 국제화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사상으로 국가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 행위로 볼 때, 세계 모든 민족들 가운데 작은 한민족 안에서 결혼하고 유전되는 형질들은 우수성에서 의심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이나 중국의 여러 민족과 문화들이 충돌하면서 발전된 문화를 낳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민족의식은 건전하면서 개방적인 민족주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생물의 세계>를 배우면서 생물학의 지엽적이며 고차원적인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는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사례를 기억하여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