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7천여명의 주자들이 춘천 종합 경기장을 출발하는데만 해도 20여분이 걸렸다. 주자들은 전자칩을 신발에 부착하여 출발선을 지날 때 기록이 측정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풀코스 기록이 없는 첫 출전이었기 때문에 가장 늦게 출발하는 K그룹에 속해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 그리고 무수히 많은 발걸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 전 희노애락들의 과거들로 눈은 뜨거워지고, 단지 즐겁게 달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5km
계속 오르막...
초반 5km페이스 조절이 전체 레이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대한 오버페이스 안하려고 노력했다...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절경... 달림이들의 탄성... 왼편은 푸르른 절벽, 오른편은 새파란 호수, 위는 높디높은 하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내가 달리고 있는것을 잊게 한다..
몸은 슬슬 달궈지고 속도도 붙기 시작한다.
15km
5km 지점 마다 여중생 자원봉사자들이 물과 음료를 주며 '힘내요!' '화이팅~'이라고 외쳐준다... 귀엽다.. 근데 '오빠 달려'는 멀까... 나이가 몇인데 어린것이....
중간중간 마을 주민, 경찰들도 나와 응원해준다... 꼭 나한테 해주듯...
20km
하프다. 지금껏 하프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 소진하고 뻗었는데, 후반을 위해 천천히 달려서 그런지 이때 까지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4시간 30분대를 예상하며 페이스메이커와 발을 맞춰본다..
레이스가 중반을 넘어서 앞에서 달리고 있는 다양한 주자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수능대박!! 딸을 위해 아빠가 달린다', '외고합격'의 문구를 뒤에 달고 달리는 어느 나이 많은 아저씨..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을 맨발로 달리는 노인장...
등에 배번호를 부착한 강아지와 함께 달리는 남자...
굴렁쇠를 굴리며 태극기로 온몸을 감싼 사람...
생생한 마라톤을 찍고자 무거운 사진기들고 뛰는 주자...
모두들 깊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25km
갑작스럽게 찾아온 에너지 고갈, 빈혈, 피로감... 아직 마라톤의 벽이라는 35km는 10키로나 남았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때마침 찾아온 여중생 봉사단과 급수대. 초코파이 4개를 순식간에 먹고 포카리 3잔 들이켰더니.... 참... 인체는 신비롭다... 바로 빈혈기, 피로감, 허기짐이 사라지고 다시 힘차게 뛸 수 있었다. 그리고 미리 챙겨뒀던 파워젤도 하나 먹고... 효과 만점
그런데 난 이상하리 만큼 체력이 많이 남아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듯 달려나갔다...기분 쵝오
37.5km
무릎에 통증이 심해졌다... 대회 전날, 사내 체육대회로 관악산 등산 후 무릎에 조금 무리가 이미 있었던 것이 자꾸 걸렸다...
결국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의 찌릿한 무릎 통증으로 남은 7~8km를 절뚝이며 뛰었다...
쓴 웃음과 함께...
40km~Finish
그런데 재밌는건....하하하 인체는 신비롭고 사람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비슷한 통증이나 고통으로 걷던 사람들도, 종합경기장에 가까울 수록 많은 시민들이 에워싸며 화이팅을 외쳐주는 가운데 걷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끝까지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나도 뛰었다...
4시간 50분 7초로 완주